전기차의 가장 큰 약점은 겨울이다. 휘발유차는 엔진 폐열로 실내를 공짜로 데우지만, 전기차는 폐열이 거의 없어 전기로 직접 공기를 데워야 한다. 일반 PTC 히터는 시간당 3~4kW를 쓰며, 이는 같은 거리를 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30~50%에 해당한다. 한겨울 EV 거리 손실의 절반은 히터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V에 도입된 기술이 히트펌프다.
원리 — 에어컨을 거꾸로 돌리는 일
에어컨은 실내의 열을 빨아내 실외로 버린다. 그 과정에서 냉매가 압축·팽창을 반복하며 열을 운반한다. 히트펌프는 이 흐름을 반대로 돌린다. 외기·모터·인버터·배터리에서 발생하는 미열을 냉매로 끌어다 실내를 데우는 것이다. 1kWh의 전기로 압축기를 돌리면 1kWh + 외부에서 끌어온 열이 합쳐져 실내로 2~3kWh 분량의 난방이 들어간다. 이론적으로 같은 전기로 두 배 이상의 난방을 내는 셈이다.
실 효과
히트펌프 차량과 PTC 단독 차량의 겨울 거리 손실 차이는 다음과 같다.
- 외기 0~5℃ — 히트펌프 우위 5~7%
- 외기 -5~0℃ — 히트펌프 우위 8~10%
- 외기 -10~-5℃ — 히트펌프 우위 8~12%
- 외기 -15℃ 이하 — 히트펌프 우위 줄어듦 (PTC 보조 가동)
한국 겨울 평균 외기 -5℃ 부근에서 히트펌프의 효과가 가장 분명하다. 같은 차종이라도 히트펌프 옵션 유무에 따라 한겨울 한 번 충전 거리가 30km 이상 차이 날 수 있다.
한국 시판 EV의 히트펌프
현대·기아 E-GMP 차량(아이오닉 5/6, EV6, EV9, GV60)은 대부분 히트펌프가 표준 또는 선택 옵션으로 들어간다. 테슬라는 모델 Y·모델 3·모델 S에 히트펌프를 표준 장착했다. BMW iX, 벤츠 EQ 시리즈 등 수입 EV도 대부분 히트펌프를 채택했다. 다만 같은 차종 내에서도 트림에 따라 유무가 갈리는 경우가 있어, 사양표 확인이 필요하다.
한계와 보조 PTC
히트펌프의 한계는 외기 온도가 너무 낮을 때다. 외기에서 끌어올 열이 없어지면 히트펌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영하 15℃ 이하에서는 PTC 히터가 보조로 가동되며, 이 시점부터 히트펌프 차량과 PTC 단독 차량의 거리 차이가 좁혀진다. 그러나 한국 겨울 대부분 기온은 영하 10℃ 이상이어서 히트펌프 효과가 분명히 드러난다.
구매 결정에서의 의미
한겨울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하는 운전자에게 히트펌프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히트펌프 옵션이 100~200만 원 추가 비용이라면, 5년 누적 충전비 절약과 거리 안정성으로 충분히 회수된다. 반대로 도심 단거리 위주 운전자에겐 효과가 작아 비용 대비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