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역사를 100년의 단일 흐름으로 보면, 그 안에서 전기차의 위치는 의외로 분명하다. 1900년 전기차 점유율 38%, 1920년대에 사실상 0%, 2010년대에 다시 등장, 2020년대 30%대로 회복. 사라졌다가 돌아온 기술의 연대기다.

제1막 — 첫 번째 EV 시대 (1830~1920)

  1. 1834
    로버트 앤더슨, 최초의 전기 마차

    스코틀랜드 발명가 로버트 앤더슨이 일회용 배터리로 작동하는 첫 전기 마차를 만들었다. 충전 불가능한 한계가 있었지만, 전기 동력 자동차의 첫걸음.

  2. 1859
    납축전지 발명

    프랑스 가스통 플랑테가 납축전지를 발명. 충전 가능한 배터리의 등장으로 EV가 실용 가능성을 갖게 됐다. 이 화학은 150년 후에도 자동차 보조 배터리로 쓰이고 있다.

  3. 1881
    최초의 양산 EV

    프랑스 기술자 구스타브 트루베가 파리 박람회에서 양산 EV를 시연. 이후 영국·프랑스·미국에서 EV 제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

  4. 1900
    미국 자동차의 38%가 EV

    20세기 초 미국 자동차 시장은 EV·증기차·휘발유차 셋이 경쟁했다. EV 점유 38%, 증기차 40%, 휘발유차 22%. EV는 정숙성·시동 용이성으로 도시 운전자에게 인기였다.

  5. 1908
    포드 모델 T 출시

    헨리 포드의 모델 T가 대량 생산 라인으로 출시되며 휘발유차 가격을 EV의 1/3 수준으로 낮췄다. 동시에 미국 도로망이 확장되며 장거리 주행 수요가 늘었다. EV의 한계(짧은 거리)가 부각됐다.

  6. 1912
    캐딜락의 전기 시동기

    휘발유차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수동 크랭크 시동을 전기 시동기가 대체. 휘발유차의 사용 편의성이 EV에 가까워졌다. EV의 주요 강점 하나가 사라진 셈.

  7. 1920년대
    EV의 1차 종말

    석유 가격 하락, 휘발유차 가격 인하, 도로망 확장이 합쳐져 EV 시장이 사실상 소멸. 1930년대까지 EV는 산업·상업 차량(우유 배달, 우편)에만 명맥이 남았다.

제2막 — 침묵의 50년 (1920~1990)

1920년대 이후 약 70년 동안 EV는 자동차 시장의 변두리였다. 휘발유차의 100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석유 위기 때 잠깐 EV에 대한 관심이 살아났다가, 가격이 안정되자 다시 사라졌다.

  1. 1973
    1차 석유 파동

    중동 OPEC의 석유 수출 제한으로 휘발유 가격이 폭등. 미국·유럽에서 EV에 대한 관심이 일시 부활. GM·포드가 EV 프로토타입 개발 시작.

  2. 1990
    캘리포니아 ZEV 의무

    캘리포니아주가 무공해차(ZEV) 의무 비율을 정하면서 자동차 회사들이 다시 EV에 눈을 돌렸다. GM의 EV1, 토요타 RAV4 EV 등이 양산.

  3. 1996
    GM EV1 출시

    GM의 첫 양산 EV. 0-100 9초, 거리 약 100km. 충전 인프라 부족과 차량 가격 부담으로 보급은 제한적이었지만, EV의 가능성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1999년 단종.

제3막 — 부활 (2008~2020)

21세기에 들어서며 EV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다른 차원의 부활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가전제품에서 자동차로 옮겨갔고, 환경 의식이 시장의 한 축을 만들었다.

  1. 2008
    테슬라 로드스터 출시

    실리콘밸리 출신 스타트업이 만든 첫 양산 EV. 슈퍼카 성능에 EV의 정숙성과 즉답 토크가 합쳐진 차. 자동차 산업 100년 만의 첫 EV 양산이었다.

  2. 2010
    닛산 리프 양산

    대량 보급을 노린 첫 양산 EV. 거리 117km(인증), 차량가 합리적 수준. 2010년대 EV 시장의 첫 시민권을 만들었다.

  3. 2012
    테슬라 모델 S 출시

    슈퍼카가 아닌 일반 럭셔리 세단으로서의 EV. 처음으로 휘발유차와 직접 경쟁할 수 있는 EV가 등장했다. OTA 업데이트, 슈퍼차저 네트워크 등 EV 표준이 함께 만들어졌다.

  4. 2014
    한국 EV 보급 본격 시작

    기아 쏘울 EV, BMW i3가 한국에서 양산되며 한국 EV 시장이 형성됐다. 환경부 보조금이 처음 도입.

  5. 2017
    테슬라 모델 3 출시

    대중 가격대 EV. 1주일 사전예약 30만 대를 기록하며 EV가 대중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6. 2018
    현대 코나 일렉트릭

    한국 시장에 첫 본격 양산 EV가 나왔다. 인증 거리 406km는 당시 EV 시장에서 손꼽히는 숫자였다. 한국 EV 보급의 시작점.

제4막 — 성숙 (2020~)

2020년대는 EV가 트렌드에서 표준으로 가는 시기다. 한국 신차 등록의 30%가 EV가 된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1. 2020
    현대 E-GMP 발표

    한국 자동차 산업이 EV 전용 플랫폼 시대로 전환한 신호. 2021년 아이오닉 5의 출시를 기다리며 시장의 기대가 컸다.

  2. 2021
    아이오닉 5 출시

    한국 EV의 분기점. 글로벌 World Car of the Year를 수상하며 한국 브랜드가 EV 카테고리 주류로 진입했다.

  3. 2022
    EV6 GT 출시

    한국 양산 EV가 슈퍼카 영역(0-100 3.5초)에 들어선 첫 차. EV의 가속 잠재력이 휘발유 슈퍼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4. 2023
    EV9, 7인승 EV 시대

    한국 시판 첫 7인승 풀사이즈 EV. 패밀리카 카테고리에 EV의 답이 등장.

  5. 2024
    한국 신차 EV 점유 30% 돌파

    한국 자동차 시장이 EV 시대의 본격 단계에 진입. 인프라·시장·운전 문화 모두 변화의 가속기.

  6. 2025~2026
    중고 EV 시장 본격화

    2018~2020년 보급된 1세대 EV들이 중고 시장으로 풀리며 한국 중고 EV 시장이 본격 형성. SOH·보증 잔여 등 새 거래 표준이 자리잡는 중.

다음 막 — 2030년대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다음 10년은 다음과 같은 흐름이 예상된다.

100년 전 38%였던 점유율이 0%로 떨어졌다가 다시 30%로 회복했다. 다음 30%가 어디까지 갈지가 다음 막의 질문이다.

1900년 미국 도시의 거리에는 EV·증기차·휘발유차가 함께 다녔다. 100년 후 그 거리는 휘발유차 단독의 시대가 되었다. 다시 100년이 지나며, 그 거리는 다시 EV의 시대로 돌아오고 있다. 자동차 역사의 한 큰 사이클이 닫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