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석유의 세기였다. 자동차·항공기·플라스틱·화학 산업의 모든 핵심이 검은 액체에서 나왔고,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이 세계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21세기는 무엇의 세기일까. 많은 분석가들이 같은 답을 한다. 리튬.
리튬은 어디에 있는가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분포는 다음과 같다.
| 국가 | 매장량 비중 | 특징 |
|---|---|---|
| 볼리비아 | 약 23% | 우유니 소금 사막. 채굴 미발달. |
| 아르헨티나 | 약 20% | 리튬 트라이앵글의 한 축 |
| 칠레 | 약 11% | 아타카마 사막. 세계 채굴 1위급 |
| 호주 | 약 9% | 경암 채굴이 주력. 채굴량 1위 |
| 중국 | 약 8% | 채굴 + 정제 + 배터리까지 수직 통합 |
| 미국·러시아·기타 | 약 29% | 분산 |
흥미로운 점은 매장량과 실제 채굴·정제 능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매장량으로는 볼리비아가 1위지만, 실제 글로벌 시장에 공급되는 리튬은 호주·칠레·중국에서 나온다. 그리고 리튬을 정제해 배터리급으로 만드는 능력은 중국이 압도적이다. 매장은 분산되어 있어도 정제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정제 독점
2025년 기준 전 세계 리튬 정제(배터리급) 능력의 약 70%가 중국에 있다. 광물을 캐는 단계에서는 호주·칠레가 우위지만, 그 광물을 배터리에 쓸 수 있는 형태로 정제하는 단계는 중국이 독점에 가깝다. 한국·미국·유럽 배터리 회사가 결국 중국 정제업체에서 리튬을 사 와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단순한 무역 의존이 아니라 전략적 취약점이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EV 보조금에서 중국 의존 배터리를 배제한 것은 바로 이 의존을 끊으려는 시도다. 한국 배터리 회사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리튬을 가져오면 미국에 EV 배터리를 팔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치
한국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세 회사를 통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약 20~25%를 차지한다. 셀 제조 능력으로는 세계 2위 그룹이다. 그러나 두 가지 약점이 있다.
- 리튬 공급망 의존 — 중국 정제업체 또는 중국 광산 자원에 부분 의존.
- 업스트림 통합 부족 — BYD·CATL이 광산 → 정제 → 셀 → 차량까지 수직 통합한 것에 비해 한국은 셀 단계에 집중.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호주·칠레·캐나다·인도네시아 광산 직접 투자에 들어가고 있다. 동시에 정제 시설을 한국 또는 미국·유럽에 짓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다만 광산에서 정제까지의 가치 사슬을 처음부터 만드는 일이라 시간이 걸린다.
리튬 가격 변동성
지난 10년간 리튬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 2018년: 톤당 약 17,000달러
- 2022년 11월: 톤당 약 81,000달러 (정점)
- 2024년 중: 톤당 약 12,000달러
- 2025년: 약 16,000~18,000달러
이 변동성은 EV 차량가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2022년 리튬 정점 시기에 EV 가격이 한 차례 인상됐다가, 가격 하락 후 다시 안정세로 돌아왔다. 운전자들은 이 흐름을 간접 체감했다.
리튬을 대체할 수 있는가
리튬 의존을 줄이려는 노력이 여러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 나트륨이온 배터리 — 리튬 대신 나트륨 사용.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음. 도심 단거리 EV·에너지 저장에 적합.
- 리튬 회수·재활용 —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 신규 채굴 의존을 줄임.
- 고체 전해질 —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같은 거리에 적은 양 필요.
- 도심 운영 최적화 — 같은 EV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면 인당 리튬 소비가 줄어듦.
지정학적 함의
석유 시대에 OPEC이 했던 역할을 누군가 리튬 시대에 할 가능성이 있다.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의 "리튬 트라이앵글"이 한 축이고, 중국의 정제 독점이 다른 축이다. 두 축이 어떻게 협력 또는 경쟁할지가 21세기 자원 정치의 핵심이 될 것이다.
"20세기 OPEC이 자원 카르텔로 세계를 흔들었듯, 21세기에는 리튬 정제 카르텔이 비슷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 자원 정책 전문가, 2024년 분석
한국 입장에서 이 흐름은 양면이다. 한국은 리튬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지만, 리튬을 가공해 가치를 만드는 능력(배터리 셀·차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광산 → 정제까지 가치 사슬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한국은 리튬 시대의 핵심 플레이어가 되고, 실패하면 정제업자에 의존하는 가공 국가로 남는다.
운전자에게 의미는
리튬 가격 변동은 결국 EV 차량가와 보조금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단기 변동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리튬 산업은 지금 막 성숙기에 들어섰고, 5~10년 후엔 가격 안정성·공급망 다변화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운전자에겐 차종 선택의 기준이 차량가뿐 아니라 제조사의 공급망 안정성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정도의 함의가 있다.
EV는 단순한 자동차 변화가 아니라 자원 지정학의 재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EV에 관심을 갖는 일은 차에만 머물지 않고 광산·정제·외교·환경의 영역까지 이어진다. 이 매거진의 다음 글들은 그 가지들을 하나씩 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