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발명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 탱크에 채우고, 엔진이 그것을 폭발시켜 피스톤을 움직이고, 변속기로 회전을 바퀴에 전달한다. 디테일은 진화했지만 구조는 같았다. 1900년 모델 T를 탔던 운전자가 2020년 BMW를 운전해도 며칠이면 익숙해질 수 있다. 그 정도로 자동차의 정의는 100년 동안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정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의 부상은 단순한 동력원 변경이 아니다. 자동차가 무엇으로 작동하고, 무엇을 정비하고, 누가 만들고, 어떻게 소유되는지 — 이 모든 질문의 답이 다시 쓰여지고 있다.
부품 수가 절반이 됐다
일반 휘발유차에는 약 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엔진 하나에만 1,500~2,000개의 움직이는 부품이 있고, 변속기에는 또 수백 개가 있다. 점화 플러그·타이밍 벨트·캠축·크랭크축·터보차저·머플러·라디에이터·연료 펌프… 끝없이 이어지는 부품 목록이 자동차 정비의 복잡성을 만들어왔다.
전기차는 다르다. 동력 시스템 부품 수가 휘발유차의 절반 이하다. 모터는 회전자와 고정자만 있으면 되고, 변속기는 단 하나의 감속기로 충분하다. 엔진오일·점화 플러그·타이밍 벨트는 사라졌다. 정비소를 찾을 일이 줄고, 한 번 가도 더 적은 비용으로 끝난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흔드는 변화다. 정비 매출이 큰 부분을 차지했던 딜러망이 EV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지가 산업 전반의 숙제가 됐다.
충전이 주유를 대체한다
주유는 일주일에 한 번, 5분 걸리는 일이었다. 충전은 매일 자는 동안 또는 휴게소에서 식사하는 동안 끝나는 일이다. 행위의 시간과 장소가 모두 다르다. 가정 충전기를 들인 운전자는 마지막으로 주유소에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유소에 가는 일은 차의 일상이었다. 이제는 차가 자는 동안 충전이 끝난다. 운전자가 의식하지 않는 시간에 에너지가 보충된다." — 한국 EV 운전자 인터뷰, 2025
이 변화의 함의는 크다. 주유소라는 인프라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다. 동시에 충전 인프라가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미 한국에 1만 5천 개 가까운 충전소가 깔렸지만 휘발유 주유소(약 1만 1천 개)와 분포·접근성이 다르다. 인프라의 재편이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자(SK일렉링크·차지비·E-pit 등)가 탄생했다.
OTA — 차가 출고 후에도 좋아진다
휘발유차의 출고 시점은 그 차의 정점이었다.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닳고 낡고 가치가 떨어졌다. 전기차의 OTA(Over-the-Air) 업데이트는 이 흐름을 뒤집는다. 출고 후에도 새 기능이 추가되고 단점이 줄어들 수 있다. 같은 차에서 충전 곡선이 최적화되어 SOC 80% 도달 시간이 5분 단축된 사례, 자동 차선 변경 보조가 출고 후 OTA로 들어온 사례가 이미 여럿이다.
이는 자동차의 시간 개념을 다시 쓴다. "출고 후 매년 가치 하락"이라는 단순한 곡선이 아니라, "기능은 늘고 가치는 떨어지는" 복잡한 곡선이 된다. 같은 모델·같은 연식이라도 OTA 업데이트 이력이 다른 차들이 시장에 섞이게 된다.
OEM의 권력이 재편된다
100년 동안 자동차 산업의 권력 중심은 엔진 기술에 있었다. 좋은 엔진을 만드는 회사가 좋은 차를 만들었다. 도요타·BMW·메르세데스·포드의 명성이 그 위에 있었다. EV는 이 기반을 지운다. 모터는 엔진보다 훨씬 단순하며,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진짜 차이는 배터리·소프트웨어·디자인에 있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테슬라는 엔진을 만들어 본 적 없는 회사가 자동차 산업의 시가총액 1위가 됐다. 중국 BYD는 배터리 회사에서 출발해 글로벌 EV 판매 1위에 올랐다. 한국 현대·기아는 E-GMP라는 EV 전용 플랫폼으로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권력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소유에서 사용으로?
EV의 자동화·연결성이 깊어질수록 차량 소유 모델의 변화 가능성도 커진다. 자율주행이 충분히 성숙하면 개인이 차를 24시간 소유할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 차량 공유·구독 서비스가 한국에서도 시도되고 있고, 일부 운전자에게는 합리적 대안이 되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EV 자체보다 자율주행의 성숙에 더 의존한다.
한계와 그림자
모든 패러다임 전환에는 그림자가 있다. EV의 그림자는 다음과 같다.
- 리튬·코발트·니켈의 자원 의존 — 매장지가 일부 국가에 집중돼 지정학적 위험.
- 충전 인프라의 권역 격차 — 도시·고속도로는 풍부하지만 지방·산간은 부족.
- 발전원의 본질 — 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EV의 친환경성이 갈림. 석탄 발전 비중이 큰 지역에서는 메리트 줄어듦.
- 폐배터리 처리 — 8~10년 후 처리할 배터리 수가 급증할 것. 재활용 인프라가 충분히 깔릴지 불확실.
- 정비 산업 충격 — 기존 정비소·부품 회사들의 일자리 변화.
왜 지금이 변곡점인가
2020년대 중반은 EV가 단순한 트렌드에서 표준이 되는 시점이다. 한국 신차 등록의 EV 비중은 2020년 5%대에서 2025년 30%대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EV의 신차 비중이 25%를 넘는 시장이 늘고 있다. 이 정도 비중은 더 이상 "친환경 트렌드"가 아니라 "자동차 시장의 한 축"이라는 뜻이다.
이 변곡점을 지나면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모든 차가 EV가 되고 나면 다음은 무엇인가? 자율주행, V2G, 차량 공유 — 모두 EV가 깔아 놓은 기반 위에서 가능해지는 다음 층의 변화들이다. 지금은 그 거대한 변화의 첫 장면이다.
전기차를 살지 말지의 결정은 단순한 차종 선택이 아니다. 자동차라는 도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작은 결정이며, 동시에 산업·인프라·환경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매거진은 EV를 단순히 "차" 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 로 다룬다.
본인이 EV로 옮겨온 시점은 2018년이었습니다. 당시엔 충전소가 부족해 휴게소에 들렀다 줄을 서기도 했고, 동절기 거리 손실에 놀라기도 했죠. 5년이 지난 2023년부터 시장이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충전 인프라가 깔리고, 차종 라인업이 다양해지고, 주변에서 EV를 묻는 사람이 늘었어요.
이 매거진의 출발점은 그 5년의 누적 경험입니다. 매번 검색하던 질문, 동호회에서 나눈 정보, 시승해 본 차들의 인상을 정리한 것이 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